망얀 방문기 > 선교뉴스


선교활동
선교뉴스

재단소식 망얀 방문기

페이지 정보

조회 6,853회   댓글 0건 작성일 18-01-12 09:55

본문

<!--StartFragment-->

주님! 크리스마스 휴가에서 돌아가는 귀성객들로 깔라판 부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만원입니다. 수퍼캇 고속정은 태풍으로 다 취소되어 규모가 큰 페리의 표를 구하려 줄을 섰으나, 이 끝없이 늘어선 기나긴 줄의 끝에 서서 언제 표를 구할 수 있을지. 과연 배에 탈 수나 있을지, 태풍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이 바다를 건널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주님 이 불쌍한 자를 긍휼히 여기소서!”

<!--[if !supportEmptyParas]--> <!--[endif]-->

태풍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듯, 회오리바람이 여객사무실 건물 지붕을 내리치며 사납게 긁고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드리는데 주님은 내게 망얀 방문기를 쓰라 하신다. 하늘엔 시커먼 먹장구름이 뒤덮고, 여객부두 광장을 꽉 메운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은 한 장의 표를 위해 구불구불 뱀 꼬리마냥 긴 줄에 서서 한없이 기다린다. 2시 배는 떠났다고 하니 다음 배표를 팔 것도 같은데, 줄은 한 치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5시 배라 그런지 이 느긋한 사람들은 표 팔라고 채근조차 않는다. 천여 명이 단 한 군데 연 창구 앞에 길게 목 빼고 서있으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으니 참 이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같은 줄에 선 20대 중반의 예쁜 여성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반색을 한다. “한국이 참 아름답다고 들었어요!”나는 그녀에게 민도로섬이야말로 정말 훨씬 더 아름다운 곳이에요.”라고 답하며 줄 자리를 부탁했다. 진심이다. 민도로는 참 아름다운 곳이다. 부두 한 귀퉁이에 한 뼘 자리를 찾아 앉아 노트를 꺼내들었다.

박찬모이사는 우리를 데려다 주고는 박운서장로님이 염려되어 총총 서둘러 떠났다. 혹여 통증이 오고 어려운 상황이 닥칠까 염려되어서다. 어제 다쿠탄과 바궁실랑 교회를 방문하고 돌아오는데 장로님께서 서둘러 와달라는 전화를 넣으셨다. 평소에는 없던 전화여서 발길을 재촉해 왔더니 수술부위에 문제가 생겨 반나절을 꼼짝 없이 누워계셔야 했다는 것이다. 점심도 거르고 그리 계셨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우셨을까! 장로님을 돌보는 리사를 우리가 타갈로그 통역으로 데려갔으니 더 막막하셨을 게다.

왜 미리 전화하시지 그러셨어요?” 내가 묻자 장로님은 볼일 보러 간 사람인데 일을 보고 와야지.”라고 답하신다. 박이사가 서둘러 들어가 드레싱을 하고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도 장로님은 감사한 주님! 이 좋은 곳에서 보람 있게 보내게 하시는 주님이 감사하다.”이 나이에 나처럼 행복한 사람은 드믈 것이라며 무한한 감사와 기쁨을 주님께 드렸다.

그렇다. 지난 열흘간 14개 교회의 13분 현지 목회자들을 만나 사역의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며 하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예뻐하시는지 실감했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 사랑하듯 주님은 이들을 보며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놀아도 예쁘고 찬양하면 더 예쁘고 먹으면 먹은 입모양까지 예쁜 그런 손자 보듯 사랑하고 계심이 느껴졌다. 주일 예배를 함께 드렸던 산시드로교회에서는 창밖 야자나무 위에 주님이 앉아 유쾌하게 이들의 찬양을 즐거워하시는 것만 같았다. 그런 민족을 박장로님께 맡기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망얀은 가난하지만 골짜기마다 이야기가 넘쳤다. 아토이교회와 뭉고스교회를 비롯해 산시드로교회, 알리망오교회, 다쿠탄교회, 바궁실랑교회를 칮이 많은 교인들과 교육걱정, 먹거리 걱정들을 함께 나누었다. 간증과 농사 이야기, 사랑이야기, 아이들 이야기여긴 이야기들이 흐르는 곳이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인지, 그들과 대화하면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어도 가난해보이지 않았고, 낡아 구멍이 숭숭 뚫린 셔츠를 입고 있어도 남루해 보이지 않았다. 뭉고스교인들은 작년까지 매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마닐라까지 걸어 걸식여행을 떠났던 이야기를 신나게 털어놓았는데, 그런데도 그들이 결코 거지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눈빛 때문이었다. 즐거움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피난따오 교회와 아나하우교회를 8년 만에 다시 찾으니 교인수도 많이 늘어났고 예배도 완전히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교회마다 태양열 전기가 설치되어 전등불빛이 교회를 밝혔고 전자기타가 강렬한 리듬으로 찬양을 리드하면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도 많이 늘어났다. 14명이 모리아기숙사에서 다니고, 25명의 학생들이 학비지원을 받아 고등학교에 다니며 대학 진학의 꿈을 꾸고 있었다. 특히 에시는 모리아기숙사 1기생으로 출발해 모렌테 고등학교를 마치고 Innovative College 학생이 되어있었다. 이제 1년만 더 공부하면 졸업해 어엿한 학교 선생님이 된다. 크리스마스 파티에 온 에시를 만났더니 이젠 제법 지성적인 아름다움까지 느껴졌다. 배고픔에 쌀밥을 우겨넣던 깡마른 소녀가 대학생이 되어 미래를 꿈 꿀 수 있게 되었다. 기쁨에 겨워 Innovative College를 방문했더니 성탄 휴가로 경비원만 우리를 맞이했지만 그 규모가 작지 않은 대학이었다. 마치 딸을 최고의 대학에 유학시킨 부모가 된 기분이었다.

민도로주립대학인 MINSCAT에 다니는 에밀리도 만났다. 컴퓨터 전공하는 대학4학년인 그녀는 지금 바탕가스에서 인턴과정을 밟고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꿈꾸던 미래가 그녀 앞에 바싹 다가와 있는 듯 했다. 에밀리의 집은 만살라이의 바궁실랑 교회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는 딸 얘기만 나오면 무척 자랑스러운지 내내 웃음이 입가에 머물렀다. 그녀와 가족들은 주일이면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정부군 주둔지역을 지나 교회로 간다.

이 지역은 지금 우기인데도 비가 오지 않아 바람이 휙 불면 모래먼지가 코와 입으로 파고들었다. 걸을 때마다 모래가 계속 풀썩였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 NPA(New People's Army)게릴라들이 자주 나타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NPA가 훑고 지나가면 다시 정부군이 와서 그 행적을 캐묻고 의심하는 통에 주민들은 NPA고 정부군이고 다 싫다며 손사래를 친다. 마을 개들조차 이방인을 경계하는 듯 울타리 밖으로까지 달려 나와 컹컹 짖어댄다. 망얀마을에서 짖는 개를 본 것은 여기가 처음이고 유일했다. 민도로의 개들은 모두 평화롭게 거리를 어슬렁이고 아스팔트길 가에 누워 자동차가 와도 꿈쩍 않는다. 예배 시간에도 이들은 당연한 듯 들어와 의자 밑에 자리를 잡는다. 사람을 믿고 있어서다. 그런데 바궁실랑만은 예외였다. 아마도 NPA나 정부군이 주인 가족들에게 싫은 행동을 한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척박한 원주민 동네에서 민도로 주립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처음 나왔으니 얼마나 장한 일인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사다.

망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부터 하나님은 먹을 것도 주시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해 주셨다.”고 말한다. 그들의 간증이다.

아나하우에서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고등학교에 다니는 라카 타바스는 하루 2시간씩 산속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학교에 간다. 왕복 4시간 거리이다. 망얀의 빠른 걸음으로 4시간이라면 우리 걸음으로는 얼마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친구와 함께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홀로 걷는다고 한다. 마을에서 유일한 고등학생인 이 소녀의 평균 점수는 92. 모리아 성경암송대회에서 2시간 동안 100개의 성경 구절을 외워 심사위원들을 거의 기절시킨 소녀이다. 그의 활약 이후 시간조정 방법을 찾지 못해 성경암송대회는 열리지 못하고 있단다.

라카 타바스는 연일 비가 내려 질퍽이는 산길을 오르내리며 등하교를 하다가 귀가 길에 너무 피곤하면 길섶에 주저앉아서 하나님께 "제게 힘을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한다고 고백처럼 말한다. 지난 1년 동안 서너 번 결석한 것을 소녀는 무척 아쉬워했다. 엄마가 아파 누우시는 바람에 어린 동생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학교를 쉬었을 때 속상함에 펑펑 울었다. 소녀에게 학교는 구원이나 다름없다. 공부가 곧 미래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후원자들이 보낸 장학금이 소녀가 품은 소망의 기틀이 되어 있었다. 소녀는 주님께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졸업 후 좋은 일자리를 찾아 가족과 부족을 돕고 싶다고 했다.

여기서 만난 망얀 청소년들은 하나같이 가족을 돌보고 부족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가슴 깊이 박혀있는 소명의식 같은 것이었다. 마치 60~70년대에 가난한 식구들을 위해 입술을 질끈 물고 도회지에 나와 돈을 벌어 고향에 꼬박꼬박 보내 동생들을 가르치던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모리아재단을 중심으로 한 후원과 기도가 없다면 청소년들은 이런 꿈조차 꿀 수 없었을 게다. 그 꿈들은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마을에 작은 별처럼, 교인들 집 문틀에 켜진 꼬마 태양열 전등 같이 마을을 밝히고 있었다.

뭉고스에서 만난 아이린도 잊을 수 없는 소녀이다. 뭉고스는 망얀 8개 부족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천대받는 부족이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걸레조각 같은 셔츠를 걸치고 누런 코를 단 아이들이 호기심에 뛰어나오다 말고 수줍음에 고개를 사렸다. 콧등이 시큰거렸다. 왜 이리도 가난해야 하는지? 더욱이 동네 마당은 진흙투성이다. 어디를 가든 물컹이고 질척였다. 아이들이고 어른이고 왜 다들 맨발로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신발 살 형편도 전혀 못되지만 진흙바닥에선 신발이 헐떡거려 오히려 더 거추장스럽다.

아기보자기를 어깨에 맨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웃고 속삭이고 있었고, 교회당을 놀이터처럼 구르고 뛰는 아이들 뒤에는 비쩍 마른 강아지들이 겅중거리며 따랐다. 닭들은 병아리들을 몰고 언덕을 파헤치다가 나무집 아래 그늘에 땅을 파고 들어앉고, 작은 돼지들도 먹이를 찾아 휘젓고 다니다가 교회옆 그늘 아래 누워 잠이 든다.

하루 한 끼를 겨우 먹는, 그것도 카사바나 바나나 등 채집해온 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는 동네이다. 이런 동네의 사람들은 불행하고 어둡고 아픈 얼굴이어야 한다. 그게 우리의 상식이고 고정관념이다. 그런데 대체 그들은 왜 이런가! 왜 이리 웃음이 많고 왜 이리 해맑고, 왜 이리도 행복한 얼굴인가! 배가 고파도 그들은 동네 공터에 만든 허접한 농구대에서 고무공을 가지고 신나게 게임을 한다. 온갖 묘기가 속출했다. 지나가다말고 우리도 벤치에 걸터앉아 박수를 치며 응원을 했다. 아이들은 교회당을 놀이터 삼아 드나들며 웃고 떠들고 잠도 잔다. 아기를 안은 여인들은 비록 아무데서나 셔츠를 훌떡 올려 젖을 물리는 바람에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긴 해도 행복한 웃음이다.

그런 모습으로 그들은 저녁예배에 모여 여러 팀이 번갈아 특송도 하고 다들 박수치며 찬양한다. 그 찬양은 내가 들어본 그 어떤 찬양보다 경건하고 유쾌했다. 즐거웠다. 몸짓도 눈빛도 행복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고 물어보았다. “돌보고 먹이는 분이란다. 그들은 만나를 먹고 있었다. 이웃을 도와야하는 것을 공동체의 제1 도덕률로 삼고 폭력을 가장 경계하고 싫어하는 이들의 아름다운 심성을 주님은 사랑하고 계셨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뭉고스교회당에 슬리핑백을 깔고 누우니 온갖 새소리가 들려왔다. 서로 주고받는 새들의 지저귐이 잦아드니까 이웃집 아이가 보채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다가 이내 동네는 조용해졌다. 저녁 예배 때 리니목사가 “God, First!"를 주제로 열정적인 설교를 했는데, 내일 먹을 양식 걱정 대신 뭉고스사람들은 주님을 만나고 있는지, 그들의 미소가 아른거렸다.

저녁예배를 차분히 인도하던 아이린은 모리아기숙사에서 7학년을 마치고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가 덜컥 결혼까지 한 케이스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ADDRESS : Moriah Mission, Sitio Tadiangao, Brgy. Ogbot, Bongabong, Oriental Mindoro, Philippines
TEL : +63-927-408-4016
E-mail : mmissionj316@gmail.com
Facebook : Moriah Mission (Moriah Mission for Self-Support)
Kakaotalk : cmpeople
Copyright © 2026 모리아자립선교재단 | Moriah Mission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