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소식 서신20: 선교사의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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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9,541회 댓글 0건 작성일 16-05-16 12:02본문
선교사의 휴식
선교지로 처음 나올 때만 해도 ‘몇 개월 정도면 다녀오겠지~’하는 마음으로 떠났다. 첫걸음이고해서 적응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 사명을 감당해나가다 보니 중간에 한국에 다녀온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몇 해 전 어느 중앙 일간지에서 본 글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한국선교사들은 너무 임지를 자주 비우고 한국으로 간다고 국제선교협회에서 문제 제기를 하다"라는 글을 보고 동조했던 생각이 나서였다. 이젠 입장이 바뀐 상황이었다.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 많은 고민에 빠져 판단을 해야 했다. 1년이라도 채우리라! 그리고 견디어 내리라! 다짐을 하며 감당해나갔다. 그러던 중 동역자분과의 교대 일정으로 11개월여 만에 나올 수 있었고 덕분에 달콤한 휴식도 가졌다,
바뀐 입장에서 보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선교사님들 사정도 이해가 되었고, 나 또한 자기합리화에 빠지는 경험도 했다. 사명자의 도리라는 것이 얼마나 충성과 인내가 필요한가도 다시금 깨우쳐졌다. 문제 제기의 과녁이 된 한국 선교사님들이 현지에서 부딪치는 어려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사명자로서 부름에 충실해야한다는 사명감, 이 두 가지가 마치 불편한 진실처럼 내게 다가온 것이다.
주어진 달포의 휴식을 맘껏 은혜 가운데 누리며 지내다, 인간적으로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솔직히 고백하며 다시 임지로 복귀했다. 나의 비중에 비해 휴식기간에 성도님들과 이웃들에게서 받은 환대와 격려는 분에 넘쳐서 송구스러웠고 때로는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게 만들었다. 가는 곳, 만나는 이마다 해주신 염려와 격려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한참 어르신인 노인 성도님들이 “많지는 않지만 식사라도 하라”며 쥐어주시던 흰 봉투, 그러면서 “조장로 또 보게 될까?” 하시며 당신의 노년의 생이 다 하심을 비치시던 그 모습들은 진정 잊혀지지 않는다. 그 자리를 피하고 싶었을 정도로 사랑을 쏟아 주셨다, 그리고 이웃 교회 등에서 선교간증까지 하도록 시간 주심에 더욱 감동해 세우심에 순종했다. “하나님! 저는 정말 이리 대접받을 정도로 한 일이 없고 공로가 없는데요~”라고 독백하듯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고생했다고 이렇게 위로해주시나 보다’ 라며 감사드렸다.
복귀를 염려하며 귀국했었는데, ‘아! 이젠 뒤돌아보며 피하려해 본들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굳어져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가족들 품에서 온갖 무한서비스를 받으며 가정의 중요함과 사랑을 재발견함도 큰 축복이었고, 긴장의 연속에 있던 심신이 맘껏 이완된 생활을 맛봄도 또 다른 행복이요 축복이었다. 돌이켜 보면 인생을 걸고 사명자로 나서겠다고 했던 내게 하나님은 몇 배로 세워주셨음을 체험했다. "내 속의 네가 그래도 고생한다 생각하느냐?" 깊은 울림이 가득 채워져 옴을 듣는 안식과 축복을 체험한 시간들이었다. 민도르에서 조보환선교사 띄움
(복귀시 깔라판의 석양을 보며 언제나 다시 저 배를 타고 고향 가려나~ 잠시 상념에 빠져보았다.)
(떠나올 때 고향 교회의 모습)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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